박경수 회원님

 산행하는 날에는 언제나 마음을 비운다. 그저 편안하게 난우들과 즐길 수 있는 산행이 좋기에 아무런 욕심을 부리지 않고 길을 나서는 그의 앞에는  항상 행운의 네잎크로버처럼 난초가 있었다. 한강난우회 창립멤버이자 회원들 모두가 모범생 회원이라고 칭찬하는 박경수 회원, 당연히 진작에 소개되었어야 함에도 직장 문제로 자꾸만 난실을 옮기다 보니 지금에서야 겨우 난실을 공개한다. 이제는 회원 모두가 부러워할 정도로 안정적인 난실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그에 대한 회원들의 기대감은 크기만 하다.

마음의 안정을 찾아 슬프고  지친 심신을 한곳에 정착시켜 안정을 취할 만한 것을 찾아 다니던 1998년, 우연한 기회에 서점에 들러 월간 난과 생활 창간 15주년 기념호에서 한강난우회의 창립광고를 보았다. 옳다 싶은 마음에 발족을 앞둔 한강난우회를 찾았고 그렇게 인정을 받아 창립멤버가 되었다. 그리고 정기산행을 하면서 원하던 마음의 안정을 찾으며 회원들 간의 교류와 배양정보를 어깨너머로 조금씩 배워나갔다.
 유난히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고 난복도 따랐던 그는 처음 산행했을 당시 산반 한촉을 발견했던 그날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황홀한 경지를 맛보게 했던 산반의 추억은  이후 그에게 산채의 맛을 알게 하였고, 황홀한 산채의 기분은 산을 찾을 때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즐거움에 다름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발거름이 자석에 끌리는 것처럼 발길 가자는 대로 가면 그곳에는 항상 보춘화가 아닌 변이종 춘란이 있었던 것이다.

 박경수 회원은 항상 산채 당시의 사진과 개화 후의 사진을 비교한다. 스스로 분석하고 기록일지를 적어가며 사이트에 올리는 등 온갖 노력과 정성을 기울인다. 이러한 꼼꼼함으로 보낸 지난 10년, 자연스레 배양실력이 쌓였음은 불문가지일 것이다.이제는 누가 뭐라 해도 배양의 고수라 칭해도 된다는 지인들의 평은 당연히 그냥 얻은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고집하는 통에 선배들의 가르침은 잔소리로만 들린 적도 있었다. 내 욕심껏 해보고 싶은 마음에 선배들의 말을 듣지 않다가 난도 많이 죽이는 등의 돌아보기 싫은 쓰라림도 적지 않았다. 물론  그러한 후회가 열린 꼼꼼함으로 오늘의 더욱 탄탄해진 그를 만들었다고 할 것이다.
 현재 직장문제로 경남 진주에 내려가 있는 그의 난은 최적의 자연환경을 만끽하며 잘 정돈된 단독주택의 난실에서 배양 중이다. 누가 보아도 부러울 만한 환경을 갖고 있기에 한강난우회 회원들의 한결같은 부러움과 함께 시샘 어린 눈길을  받고 있는 중이다. 아울러 얼마나 잘 키운 난을 전시회에 낼 것인가에 대한 뭇 회원들의 기대를 받고 있기에 즐거움과 함께 부담감 또한 크기만 한 그의 난실이다.

한때의 고집은 있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선배들이 잘 이끌어 주어 지금처럼 성장했음은 부인하지 못할 사실, 그것을 항상 가슴에 새기며 겸손함을 잃지 않는 그의 난사랑에 대한 마음은 언제나 초심과 함께한다. 그렇기에 적지 않는 나이에도 꾸준히 산행에 열심인 그는 언제나 마음을 비우고 난과 함께 즐거움을 만들어 나간다.난과의 만남, 한강난우회와의 만남, 난우와의 만남,이 모두가 그에게는 너무도 커다란 행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