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무 양 상 옥

지난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초등 학교에 다니는 딸애의 명승지 탐방이라는 방학 숙제도 있고, 몇 번인가 난우회 선배님과 팔만대장경을 난에 비한다면 장경각을 난실이라 생각하고 난을 키워 보자는 뼈있는 농담을 주고받은 적도 있어서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각(장경판고)의 특이한 건물구조에 대하여 조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가족끼리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해인사는 송광사, 통도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삼보사찰 중의 하나로 대장경이 보관되어 있어 법보사찰로 불리어 지고 있으며 八萬大藏經은 몽고의 침입을 극복하기 위해 1236년(고종23년)에 당시의 수도였던 강화에서 조조되어 1251년 9월에 완성되어서 강화도 선원사에 보관되어 있다가 1398년 (태조7년)에 해인사로 옮겨와서 1488년(성종9)에 건립된 장경각에 보관되었다. 이 대장경은 현존하는 세계의 대장경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일 뿐 아니라 체제와 내용면에 있어서도 가장 완벽한 대장경으로 평가받고 있다.
잦나무숲을 지나 봉황문, 국사단을 거쳐 해탈문에 들어서니 따가운 햇빛 속에서 느끼는 아늑함과 평화로움이 가득하다. 응진전 앞에는 어릴 적 시골담 밑에서나 볼 수 있는 키 큰 접시꽃과 보라색 도라지꽃들이 한여름 무더위를 즐기듯이 어우러져있다. 대적광전의 탱화를 보며 뒤편으로 가보면 담쟁이 넝쿨에 덮인 가파른 돌계단이 위험스레 버티고 있다.
이를 올라서면 장경각의 첫 건물인 수다라장(修多羅藏)이 밥그릇을 엎어놓은 듯한 뚫린 문을 하고 시원스레 서 있고 이문을 지나서 마주 보이는 비슷한 건물이 법보전이다. 藏經閣 (藏經板庫)은 修多羅藏과 法寶殿을 합해서 일컫는 말이다.같은 양식과 규모로 나란히 서 있는 특이한 이 두 건물은 간단한 부재로 가구하였고 세부 역시 간결하여 판고에 요구되는 기능을 충족시킬 목적 이외에는 아무런 장식적인 의장을 가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사면으로 뚫린 유자창(나무창)으로 장경각 내부를 들어다 보니 벽 아래쪽은 손바닥만한 통풍구가 두 개씩 쌍을 지어 뚫려 있고, 흙바닥에 그냥 세워진 여러개의 판가에는 난실에 들어있는 난처럼 검은 색의 수많은 대장경들이 세월 속에 묻혀 빼곡이 채워져 있다.
750년이 지난 오늘까지 나무로 만들어진 대장경판이 제모습 그대로 유지시킨 조상들의 슬기는 무엇일까.
경판의 훼손은 적정치 못한 습도에서 비롯되고 습도는 통풍(바람)과 온도(햇빛)이 크게 좌우 될 것이다. 예로부터 선인들은 계절에 따라 불어오는 바람을 샛바람, 마파람, 하늬바람, 된바람으로 나누어 불렀다. 샛바람이 걷듯 불면 봄이 오고, 무덥고 습한 마파람이 불면 여름이, 하늬바람이 높이 불면 가을이 차갑고 건조한 된바람이 불면 어김없이 겨울이 찾아온다.
산속 깊이 자리잡은 산사에는 낮에는 바람이 위에서 아래로 불고 밤에는 아래에서 위로는 부는 산곡풍의 영향을 밤낮으로 받는다.
장경각은 무덥고 습한 남동풍이 최대한 비껴 가도록 서남향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내부의 통풍 또한 유자창의 크기를 달리하여 산에서 내려부는 습기있는 바람이 빨리 지나가도록 앞부분은 아래쪽 유자창을 크게 하고, 올려 부는 건조한 바람을 위해 뒷부분은 위쪽의 유자창을 크게 하여 바람의 들고 나감을 슬기롭게 조절하였다.
장경각이 서남향으로 자리잡은 또 다른 이유는 장경각의 외부에 햇빛을 고루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고 수다라장 앞면 유자창이 상대적으로 더 작은 것은 장경각 내부 깊숙이 들어오는 오후 깊은 햇살을 피하기 위함이 아닐런지?
장경각 내부의 기온의 차가 심하지 않고 낮은 습도를 유지하는 선인들의 지혜는 참으로 대단한 것같다. 바닥도 역시 삼합토(숯, 강회, 소금)로 다져져 있어 습할 때는 습기를 빨아들이고 건조할 때는 습기를 뿜어내어 습도를 조절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난에 대한 애정과 정성은 곧 자연 그대로의 환경을 조성하는 일, 즉 알맞은 온도와 습도 그리고 활발한 통풍에 달려 있듯이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판고 역시 적정한 온도와 습도 그리고 통풍이 경판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시켜 현재까지 이르렀으리라 생각된다. 고려 초에 제작된 八萬大藏經이 수백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러서도 온전한 이유는 조상들의 탁월한 경험과학과 자연과의 조화와 순응 그 자체일 것이다.
올 여름에는 온다던 장마는 오지 않고 35-6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만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고온다습으로 연부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7월에 동남향에서 정동향인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집을 보러 가던 날 집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난실이 될 베란다부터 들여다보니 "사람보다 난이 우선인가?"하는 집사람의 투정이 작게만 느껴진다.
이사를 와 보니 아침 햇살이 난실 깊숙이 들어오고 11시 이후부터는 직사광선을 받지 않아 난에게는 좋은 환경인 것 같다. 오전에는 바람이 난실에서 들어와 반대 방향인 현관 쪽으로 나가고 오후에는 현관에서 난실 쪽으로 바람이 분다. 난실의 외측 창문을 오전과 오후에 위치를 달리하여 들고나는 바람의 길을 달리하여 통풍의 사각지대를 줄이게 된 것은 해인사 장경각을 다녀온 후의 새로운 통풍관리의 방법이기도 하다.
습도가 낮은 계절에는 많은 난인들이 습도 유지를 위해 가습기 및 분수대를 설치하는데 본인은 오래 전부터 바닥에 계란판을 깔아 놓고 낮은 농도의 소금물을 채워 줌으로써 습도유지를 해주고 고인물 이끼방지 및 살균에 도움이 되게 하고 있다.
난과 난실, 대장경판과 장경각! 선인들은 경판을 길이 보존하기 위해 최적의 조건을 찾아 해인사로 들어갔지만 많은 난인은 좋지 않은 여건 속에서 난을 배양하고 있다. 그러나 조상들의 슬기와 정성을 베란다의 난실에 적용시킨다면 좀더 건실하게 난을 키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